iwin/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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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캠폴로와 바트 캠폴로 부자가 함께 쓴  내가 떠난 이유, 내가 남은 이유를 우리말로 옮긴 노종문의 “옮긴이의 말”을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편집한 글입니다.

어떤 경로로든 내가 떠난 이유, 내가 남은 이유를 만나서 손에 쥐게 된 독자라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다 읽을 때까지 눈을 떼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책은 한 가족인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어머니 페기, 그다음에는 아버지 토니, 그리고 아들 바트의 이야기다. 여느 가족 이야기와 달리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슴 아프도록 깊숙이 파고드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또한 치열하고 흥미진진한 지적인 토론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트 캠폴로(1963-)는 20세기 미국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인 토니 캠폴로(1935-2024)의 아들로서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도심 빈민 사역을 하면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국 복음주의를 선도할 촉망받는 지도자로 활약했다. 바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목사이자 빈민 운동가로 살아가면서 기독교 신앙의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을 조금씩 잃기 시작했고, 2014년에는 자신이 기독교 신앙을 포기했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오래 신앙의 경계선 부근에 있었던 그가 반대쪽에 안착하게 된 계기는 2011년에 있었던 극적인 자전거 사고였다. 그는 내리막길에서 자전거와 함께 나무에 충돌하며 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심한 뇌진탕을 겪었다. 한 달여간의 회복 기간 후에 그는 자신이 더 이상 기독교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 사고를 통해 얻게 된 ‘세 가지 큰 교훈’에 대해 들려준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이 그의 뇌 안에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된 것, 자신이 빨리 죽을 거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것, 그리고 죽음 이후에 자신은 우주에 남지 않을 것임을 강렬하게 깨달은 것이었다.

그런데 바트는 기독교 신앙을 떠난 이후에도 종교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앙 여정을 설명하면서, 그는 자신을 ‘신무신론자’라기보다는 ‘불가지론자’로, 그리고 ‘무’ 자나 ‘불’ 자가 들어가지 않는 긍정적인 용어로는 ‘휴머니스트’로 칭한다. 덧붙여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믿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이성적으로 도무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존재하심을 증명하신다면, 다시 하나님의 존재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찾거나 어떤 신적 개입의 체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유물론 세계관에 만족하고 있으며, 지금은 신시내티에서 상담가로, 신시내티대학교의 휴머니즘 채플린으로 활동하면서 세속주의 휴머니스트 공동체를 이끌며 사랑, 변화, 감사, 겸손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바트는 기독교 신앙을 떠난 다른 친구들에게 세속적 인본주의자가 되는 것이 곧 종교를 비웃고 조롱하는 적대적 무신론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님을 말해 주고 싶어 한다. 그는 기독교가 주장하는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을 버릴 때, 그 믿음과 함께 우정이나 공동체나 봉사 등 모든 좋은 것들을 함께 버려야 할 필요는 없다고 제안한다. 오히려 이성적으로 믿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것만 제거하고 나면, 나머지 좋은 가치와 실천 방식들만 가지고 사랑과 변화를 추구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쉬운 이유는 참여자에게 오늘날 과학의 시대에는 낡은 세계관인 기독교의 교리를 믿으라고 설득해야 할 부담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영생’을 믿지 않고 사는 휴머니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이 삶이 정말 우리가 가진 전부라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합리적인 선택은 이 삶을 최대한 의미 있게 사는 것뿐이며, 그래서 사랑하는 관계를 부지런히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일을 하며, 이 우주의 경이로움과 무엇보다도 살아 있고 생각할 수 있다는 특권에 감사하는 마음을 길러 나가는 것이다."

아버지인 토니 캠폴로는 침례교 목사이고 열정적인 설교자이며 사회학 교수였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사역에 평생을 헌신했던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그의 설교는 복음적이고 강력하다. 교리와 실천에서도 그는 근본주의자가 아니었고, 가난한 사람들, 이민자들과 소수자들을 옹호하는 사역에 헌신했으며, 오늘날 ‘복음주의’에 지독한 오명을 씌우고 있는 MAGA 운동과 그 전신인 미국의 종교적 우파 운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성경에 붉은 글씨로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데 헌신하는 운동인 ‘레드 레터 크리스천 운동’을 셰인 클레이본과 함께 펼쳤다.

토니는 아들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와 불신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경청하고 최선을 다해 이해하고자 하며, 자신이 확신하는 바를 설명하고 옹호함으로써 응답하고 있다. 그는 아들 바트가 점차 정통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멀어진 이유는 그가 비록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며 소외된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궁핍한 이웃을 늘 가정에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는 고귀한 사역을 했지만, 신앙 공동체로부터는 거리를 두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타당성 구조’ 바깥에 머무르게 되면, 해석하기 어려운 인생의 고난과 모순을 만날 때 개인의 신념은 지속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타당성 구조는 개인이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어떤 ‘신념 체계가 존재하고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토니는 아들이 추구하는 휴머니즘에는 가장 진정한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바트가 오래 의심해 왔고 더 이상은 믿지 못한다고 말하는 대리 형벌로서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교리와 성경의 권위와 눈에 보이는 오류를 조화시키는 문제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십자가 사건을 예수님과의 영원한 연결이라는 생각을 통해 이해하는지, 또한 왜 성경의 문자적 해석이 아닌 성경이 드러내는 진실에 초점을 맞추는지를 설명한다.

두 사람의 토론의 초점은 초월적인 하나님 체험의 문제로 수렴된다. 아버지 캠폴로는 앞부분의 짧은 자서전적 회고 속에서 복음을 믿는 신앙인이자 지성인 사회학자로서 또 평생 신앙의 성숙을 추구해 온 여든 살의 노인으로서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고 있는지를 묘사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내 신앙의 여정은 하나님과의, 그리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끊임없는 대화였다. 나는 혼자 있을 때든, 다른 신자들과 함께 있을 때든, 잠시 멈춰 하나님을 떠올리며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할 때마다 성령이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심을 느낀다. … 일상 속에서 겪는 평범한 경험과 만남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이 ‘내게’, 그리고 ‘내 안에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말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성령께서 내 안에 어떤 감수성을 일으키신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 사물 속에 숨어 있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어떤 현상학자들이 말하는 ‘마음챙김(mindfulness)’과도 비슷한 감각일 것이다. 그는 나로 우리 주위에 가득한, ‘빛나는 축복들’(딱히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게 하신다. 그 축복들은 그저 우리가 눈여겨보고, 마음을 열기만 하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바로 그분이 내 안에 함께 계시기에, 나는 진심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 낼 수 있다."

그가 말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사물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빛나는 축복들’은 아마도 이 경험은 물론 순수한 자연주의 세계관을 받아들인 바트 캠폴로가 말하는 ‘끊임없이 깊어지는 경이와 감사의 감각’과 일맥상통하는 경험일 것이다. 아마도 이 두 사람,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체험을 두 가지 다른 방향에서, 다른 세계관 안에서 그들이 보는 대로 묘사하는 듯하다.

아버지 캠폴로는 자신의 신앙이 초월적인 것들에 마음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결단’임을 인정한다. 바트와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그런 신비 체험을 뇌에서 일어난 전기적 충동을 뇌의 작용인 의식이 그렇게 해석한 것이라고 환원주의적으로 설명하겠지만, 그는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아들 캠폴로는 개인의 초월적 경험은 사실 진정한 초월적 존재와의 만남은 아니지만, 기적적이고 경이로운 경험임을 받아들인다. 그에게는 자연적 실재가, 그리고 우리의 뇌가, 초월을 경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 놀라운 일이다. 인간은 그 경험에 각자 자신들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우주 자체는 그런 의미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이 한 장씩 교대로 글을 쓰면서 날카로운 지적 토론을 이어 간다. 그 토론은 서로의 관점 차이를 잘 드러내며 서로 양보 없이 비판적이지만, 동시에 서로를 잘 이해하고 아끼고 있는 두 사람의 마음도 잘 드러내 준다. 상호 간의 신뢰와 존중은 이 어려운 토론의 든든한 토대가 되며 대화가 끝까지 진행되도록 붙잡아 준다. ‘함께 쓰는 결론’의 고백처럼, 실제 대화는 이렇게 이상적이지는 않았고, 많은 끼어들기와 거친 말과 사과와 용서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힘든 경청과 인내의 결과는 헛되지 않았다. 결론에 따르면, 그들은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배웠고, 서로 동의하는 바를 확인했으며, 잠정적인 만족에 도달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수고 덕분에 이처럼 어려운 주제에 관한 지적인 대화의 모범이 될 만한 책을 읽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서문에서 어머니 페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결론에서 아버지 토니가 언급하는 말들은 이 책이 단지 지적인 토론이나 변증서가 아니라 한 가족의 이야기임을 상기하게 해 준다. 부부는 자신들의 정체성의 가장 깊은 부분인 기독교 신앙을 자녀들이 떠난 것을 안타까워한다. 기독교 교리에 따라서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한 생명을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상상할수록 끔찍한 괴로움이 아닐 수 없다. 한편, 그들은 또한 공개적으로 신앙을 떠난 아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분노한다. 그들의 비난과 섣부른 충고가 아들의 돌이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장애물만 놓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삶이 여전히 기독교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임을 알고 조금 안도하며, 그를 격려하고, 사랑하는 아들의 운명을 사랑이 많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리는 기도를 드린다.

내 가까운 친구들과 후배들 중에도 한때 열심 있는 기독교 신자였다가 이후에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가 된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 저마다 다른 이유와 계기와 상황이 있었겠지만, 무신론이나 불가지론에 도달하게 된 감정적·지적 여정에는 아마도 바트 캠폴로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만 번의 응답 없는 기도와 수천 번의 균열을 겪으며, 정통 기독교 신앙과 초자연적인 것을 믿는 능력을 조금씩 잃어 갔다.

기독교를 ‘졸업’하고 무신론자가 되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면, 아마도 자신이 한때 열렬히 신봉했던 근본주의적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와 환멸감, 삶의 복잡한 현실이나 고난과 모순을 직면하며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 대안적 세계관을 향한 점진적 회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래된 종교적 의무와 습관을 내려놓는 것이 주는 해방감 등일 것이다. 바트의 경우는 근본주의적 교리에 오래 의심을 품어왔고, 과학주의적 유물론적 세계관이 그의 대안이 되었다.

반면, 아버지인 토니 캠폴로는 정통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근본주의적 교리와는 뚜렷한 선을 긋고 있다. 그의 십자가 해석은 바트가 비판하는 종류의 해석이 아니고, 그가 성경의 권위를 이해하는 방식도 근본주의적이지 않다. 그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교리를 존중하지만 그것을 고수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지성적 탐구를 통해 평생 그 의미를 재해석하고 확장해 나갔다. 그는 자기 시대의 철학이었던 실존주의와 마르틴 부버의 관계적 존재론을 받아들이며 형이상학과 인식론에서 과학주의를 넘어서고 있다(과학주의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토대의 일부이기도 하다).

존재론의 관점에서 보면, 과학주의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과학적으로 관찰 가능한 대상일 것이라고 ‘전제’하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다가 실패한다. 그리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과학주의자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취하고 있는 방법론적 전제 때문이다. 과학은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 사이의 역학을 기술하지만, 그 역학은 우주의 기계적인 측면만을 보여 줄 뿐, 모든 존재하는 것의 심층적 차원과 의미를 포함하지 못한다. 그 결과 과학주의자들이 상상하는 기계론적 우주는 의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의미는 순전히 사람의 뇌가 만들어 낸 허구적 구성물일 뿐이다.

반면에 존재론적 접근은 과학적으로 관찰 가능한 가시적 세계는 단순히 실재의 한 층위일 뿐이며, 실재는 가시적 세계뿐 아니라 그와 연결된 보이지 않는 다른 층위의 높이와 깊이가 있는 세계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현상을 신중하게 관찰하면서 그 안에서 실재의 다른 층위를 포착하고자 한다. 인간은 물리적·생물학적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존재의 다른 층위에서도 존재하며, 다른 존재들과 다른 층위에서 교류하는 경험과 소통이 가능하다. 이것의 한 예가 마르틴 부버가 말한 ‘나와 너’의 관계적 경험이다. 이런 우주는 과학적 지식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지만, 그것에 더하여 의미와 지혜와 초월적(초과학적) 교감의 수준을 수용한다. 서구에서 이런 세계관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한때 근대주의의 등장과 함께 폐기되고 잊혔으나, 최근 근대주의의 한계에 대한 점증하는 인식과 함께 다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처럼, 바트와 토니의 차이는 세계관적 차이이고, 세계관은 그 자체가 가장 근본적인 전제들이므로 증명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세계관을 비교할 방법은 세계관 자체의 내적 일관성과 경험적 설득력이며, 이에 관한 판단도 객관적일 수 없고, 판단하는 개인과 공동체의 경험과 선입견에 크게 좌우된다. 결국 유물론자는 과학주의적 세계관을 믿기로 결심한 것이고, 그리스도인은 존재론적 세계관을 믿기로 선택한 것이다. 물론 기독교 세계관은 수많은 존재론적 세계관 중에서도 특별히 복음이 계시하는 하나님, 즉 세상을 자신이 피조물들과 함께 거주할 성전으로 지으셨고, 사람과 동물을 자신의 성품을 따라 빚으셨으며, 아들을 사람의 모습으로 보내어 자신이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알리신, 그 하나님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이 되는 그런 존재론적 세계관이다.

나도 아직 토니 캠폴로처럼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으며, 토니와 함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보고 듣고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우주는 더 크고 광활할 뿐 아니라, 더 깊고 높을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2천 년간 상상해 왔고 지금 최선을 다해 상상할 수 있는 기독교보다도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는 더 넓고 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지혜의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시고 그분이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그는 자신을 더듬어 찾고 발견하며 추구하도록 인류를 이끄실 것이며(롬 1:19-20), 자기를 찾는 자들을 반가워하시며 상을 베푸실 것이다(히 11:6). 또한 그는 우리와 모든 사람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계시며(행 17:27-28), 심지어 우리 존재와 마음과 뇌와 몸의 세포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으로부터 자신을 알리시고 응답하고 찾고 만나라고 초대하고 계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만나려면 우리는 과학적, 역사적 수준의 탐구에 머무르지 말고, 모든 자연 속에서 보이지 않은 심층적 수준의 존재론적 연결을 통해 전해 오는 울림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