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by Michal Jarmoluk from Pixabay
Image by Michal Jarmoluk from Pixabay

 

지구 환경 문제와 인간 탐욕의 상관관계를 풀어내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논밭을 일구며 땀을 흘리는 농부의 모습이 평화롭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지만 내게는 꼭 그렇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랜 노동으로 깊이 패어버린 주름 속에서 삶을 지탱하기 위한 애잔한 수고가 보이기 때문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땀을 쏟아야 하는 것이 인간 본질이다. 그러나 그 생존을 위한 인간의 분투가 지나친 욕심이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욕심으로 이어진 긴 사슬의 끝에 지구 환경 문제가 걸려 있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거친 땅을 일구는 수고를 탓할 수는 없다. 살기 위해 흘린 땀방울은 오히려 숭고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한 탐욕으로 바뀌면서 자연은 고통 받게 되었다. 적정 수준의 소산물을 내기 위해서 적정 수준으로 일구었던 토지가 부족하게 된 것이다. 더 많은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은 중장비를 동원해 나무를 베어내고 산지를 통째로 불태우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지구 위에 땅이 부족하여, 지구 밖의 행성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과연 얼마나 더 많이 가지고 소유해야 만족할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인류 역사의 기록은 인간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노력과 분투를 담고 있다. 살기 위해서는 일해야 했고, 때로는 싸워야 했다. 가장 오랫동안 인류를 먹여 살려온 기본적인 활동은 농업이었다. 씨를 뿌리고 가축을 키우기 위해서는 땅이 필요했다. 그러나 자연은 쉽사리 땅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류는 지속적으로 그 수가 불어나게 되었다. 산술치로 증가하는 식량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의 성장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1] 더 많은 자녀를 먹여 살리려면 더 많은 식량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더 많은 땅을 찾아내야 했다. 때로는 나무를 없애야 했고, 때로는 커다란 바위를 골라내야 했다. 거친 땅을 일구는 수고 없이 인류는 생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일정 시간이 지나자 인류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식량을 생산해낼 땅의 면적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지구는 유한하다. 농작물과 가축을 키울 수 있는 땅은 더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농업기술과 축산기술 역시 제 아무리 발달해도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결국 인간은  손대면 안 되는 땅까지 넘보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열대우림 지역, 특히 아마존 강 유역이다.

아마존 강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강으로 알려져 있다.[2] 남아메리카 페루의 안데스 산지 고원의 빙하에서 시작되어, 대륙을 가로지르다가 동편 대서양으로 흘러간다. 길이만 대략 7천 킬로미터에 이르며, 수량은 미국의 미시시피 강과 이집트의 나일 강을 합한 것보다도 더 많다고 한다. 그 규모는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마존 강이 흐르는 일대는 대부분 열대우림 지역이며, 그 규모만큼이나 많은 동식물들이 서로 얽혀서 거대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아마존의 열대우림에는 대략 3백만 종 이상의 생명체가 살고 있으며, 2천 500종이 넘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수치는 전 지구에 존재하는 열대 나무 전체의 약 3분의 1이나 되며, 전 지구 열대우림의 절반 이상이 아마존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아마존 강 유역 일대는 심각한 파괴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플랜테이션이라 불리는 대규모 농업과 기간산업 등을 위해서 무서운 속도로 열대우림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열대우림 자체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 속에 삶의 터를 잡고 살아가는 생물들도 서식지를 잃고 있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아마존 유역의 열대우림이 단지 아마존 주변 일대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존 열대우림은 흔히 ‘지구의 허파’라고 불린다.[3] 지구에 존재하는 산소의 20퍼센트 이상이 아마존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허파 역할을 하는 아마존이 망가진다면, 아마존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급속하게 아마존 우림을 파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땅을 얻기 위해서다. 아마존의 나무를 베어 내고, 심지어 불태우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 곧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우주로 향하는 생존 욕구

생존을 위해서 더 많은 땅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시선은 심지어 지구 밖 저 우주로까지 향하고 있다. 인간이 달이나 화성과 같은 다른 천체에 이주하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달이나 화성에 인간이 거주할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수차례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었다. 최근에는 다국적 기업으로 알려진 ABIBOO라는 건축회사에서 화성에 약 25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대규모 건축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화성은 지구와는 다른 대기압과 태양 복사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도록 많은 과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설계를 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 계획이 실천되는 시기를 가깝게는 2054년으로 예상했다. 정말 실현된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정말 실현될 수 있을지 여부는 아무도 장담을 못한다.

그러나 보다 진지한 질문은 그 건축회사 설립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화성에 지속가능한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얻는 학습 결과는 지구와 다르게 수행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더 나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노하우와 아이디어, 통찰력을 제공한다.” 언뜻 자신들의 계획에 대한 겸손으로 들릴 수도 있고, 철저한 검증에 대한 지혜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무책임한 말도 드물다.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당연한데, 어려운 일이라면 그 어려움은 도대체 무엇을 말할까? 화성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얻는 학습 결과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 과정에서 얻는 노하우, 아이디어, 통찰력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결국 누군가는 먼저 화성에서 살아야 한다. 먼저 어려운 일을 당해야 하며, 누군가는 그 개발 과정에서 얻을 노하우와 아이디어, 통찰력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 좋게 말하면, 희생 없는 영광은 없으니 화성 도시 건설이라는 인류의 위대한 숙원 사업을 위해서 누군가는 영광스러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아마존 파괴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마찬가지로, 화성 도시 건설 역시 인류의 생존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기 때문에 생각해 낸 궁여지책일 수도 있다. 무한하게 보이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어쩌면 이런 궁여지책을 가능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이 계획은 너무도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정말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 탐욕을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질 것인가?

환경 보호의 유일한 길

인간의 생존과 땅의 관계는 처음 살펴본 것처럼 전체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성경이다. 첫 사람 아담도 땅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얻는 농부였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아담을 두신 에덴동산의 모든 식물들은 사실상 사람의 식량이었다(창 1:29). 더 나아가, 원래부터 에덴동산의 모든 생명체들은 첫 사람인 아담이 돌보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것을 모두 축복으로 주셨다(창 1:28). 다른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본질상 인간의 생존은 에덴 안에서 모든 것이 충분했다. 먹을거리를 놓고 수고하며 분투할 이유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저지른 것이다. 악한 뱀의 꼬임에 넘어가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히브리어 ‘에츠’)에 손을 대었다. 뱀도 아담의 아내인 하와도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 누구보다 책임이 큰 아담 역시 지울 수 없는 형벌을 받게 된다. 수고하고 땀 흘려 땅을 일구더라도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속을 뒤집어 놓을 것이며, 더 이상 충분한 먹을거리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창 3:18-19). 하나님이 처음 주신 이 땅은 물론 모든 생명체들은 인간에게 축복이었다. 그러나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저주로 바뀌었다. 축복이 저주가 된 것이다.

물론 죄로 인해서 받게 된 인간의 가장 큰 저주는 죽음이다. 인간의 죄로 인해서 분노하신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겪는 모든 비참함을 너머 영원한 지옥의 죽음을 저주로 주셨다. 생존을 위해서 손을 댄 나무가 결국 죽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죽음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인간은 그 저주를 벗어나기 위해, 곧  죽음을 피하고자 몸부림친다.[4] 아마존 우림의 수많은 나무들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자신들의 생존을 구하며, 좀 더 발달한 과학기술을 통해서 망가진 자연환경도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선한 마음으로 행하는 환경운동이 더 나은 지구로 회복시킬 수 있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환경에 대한 마음이 인간의 생존에 대한 욕구보다 더 클 수 있을까? 인간 역사에 이기심보다 이타심이 더 컸던 적이 있었던가? 정확히 딱 한 번, 역사의 분깃점이 되었던 2천 년 전 예루살렘 작은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서 있었다. 바로 예수님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태초에 행하셨던 최초의 역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초의 창조 역사 이후에 하나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 창조하신 세상을 다스리시고 보존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무책임한 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어도 상관없을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아들 예수님까지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끝까지 책임지시는 이타심의 결정체가 바로 예수님인 것이다.

한 때 사람들, 특히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이타심에 대해서 의심을 품었던 시기가 있다. 바로 소위 ‘과학혁명’이 일어난 17-8세기 서구 유럽이었다. 이 시기부터 근대 과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했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 많이 유행했던 이단적인 신학이 있다. 바로 이신론(deism)이다.

이신론의 하나님은 창조주이기는 하지만, 창조하신 이후에는 이 세상을 내버려 두고 저 하늘로 멀리 멀리 가버린 신이다. 말하자면, 이제 더 이상 세상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창조주가 내버려둔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오직 창조주가 남겨놓은 자연의 힘과 법칙이다. 그래서 소위 과학혁명을 일으켰던 당시 많은 과학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듯 했지만, 실상 이신론의 하나님을 믿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섭리’와는 무관한 하나님, 더 이상 세상의 일에는 관심 없는 무책임한 하나님이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대로라면,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그냥 내버려 두어도 될 우리를 구태여 아들을 보내 십자가를 지게 하셨을까?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끝까지 책임지시는 이타적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셨다. 심지어 예수님도 역시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닮으셨다. 이신론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과는 양립할 수 없다.

인류 역사에서 예수님 외에는 인간의 영원한 생존을 책임져준 예가 없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예수 밖에는 길이 없다고 말한다(요 14:6). 예수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인간의 생존은 인간 스스로가 아닌 하나님께 달려 있다. 예수님은 죽음을 넘어 부활하심으로 참된 생명의 길을 여셨다. 십자가 나무(신 21:23, 갈 3:13)에 스스로 달려 죽으심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살게 해 주신 것이다.

더 나아가, 다시 오실 예수를 통해 온 자연 세상이 새로운 땅으로 재창조될 것이라고 말한다(계 21:1-4). 예수만이 우리 인간의 소망이요, 온 세상의 소망이 되는 이유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온 만물이 예수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전 8:6).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내 생명의 구원을 위한 것만으로 환원시켜서는 안 된다. 이 땅을 다스리라고 주신 권세는 우리 인간 생존은 물론 자연 환경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1. 박지향, 제국의 품격 , 107.

2. 인터넷 위키피디아에서  ‘아마존강’ 또는 ‘아마존 우림’으로 검색.

3. 케시 왓슨, “환경 파괴: ‘지구의 허파’ 아마존, 산림 파괴 15년만에 최대”, BBC news 코리아 온라인판, 2021년 11월 20일자.  이 보도가 인용한 브라질 국립 우주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마존 열대우림의 벌목은 1년 만에 22퍼센트 증가했으며, 그 면적은 대략 1만 3,235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이 밖에 여러 보도를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마존 삼림의 파괴는 전 지구적인 영향을 주며, 앞서 다룬 지구 온난화 현상과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그러나 전 세계 인구의 적어도 4분의 1은 더 이상 생존 그 자체를 위해서 매일 투쟁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는 시대는 점점 지나고 있고, 오히려 지나친 풍요로 인한 결핍의 결핍이 인간 존재에 더 큰 문제가 된다.